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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근도시재생지원센터의 경험으로 비춰본 서울시 2세대 도시재생사업의 그림자

 

 

버들(류민수 코디네이터)

 

 

서울시 뉴타운의 출구전략으로 도시재생이 호명됐다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도시재생의 기조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은 실질적 주거정비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고시하려면 도시재생활성화구역은 인구감소, 상권쇠퇴, 주택노후도 심화라는 기준에 구체적인 주택정비사업계획 추진여부까지 충족시켜야 된다. 물론 서울시에서 하달된 지침 자체는 선정 기준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CRC를 막아 놓은 것도 아니고, 공공참여형 정비사업, 공적인 요건을 충족하면 전격적인 혜택을 주는 관리구역 등과 같이 주민들의 뜻만 모으면 활용할 수 있는 공공성을 담보한 사업들 또한 이미 많아, 기조의 변화가 억지스럽지 않다.

하지만 아직 활성화계획이 고시 되지 않은 현장에서 느끼는 상황은 사뭇 다르다. 우선 개별 사업지에서 받게 되는 서울시 컨설팅의 기조들은 정비사업과의 연계가 보이지 않으면 현 상황에선 고시가 어려울 것이니, 지방선거까지 사태를 관망하자는 뉘앙스를 띠었다. 더하여 이런 상황에서 재개발·재건축이 공론화된 지역의 주민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주민, 행정과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치구는 서울시의 지침과 컨설팅 뒤에 숨어 주민, 때로는 센터, 용역사를 관리하고자 하는 충분한 유인을 가지게 된다. 어떤 지역은 용역사가 아예 없거나 6개월 단위로 계약이 연장되며, 공동체와 관련된 예산은 집행하기 어렵다. 심지어 이러한 갈등 속에서 적극적으로 공동체 활성화를 추구해나갈 수 있는 센터는 조직의 관점으로 봤을 때 존재할 수 없다.

이렇기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얼마가 걸리든 간에 2세대 도시재생사업이 적합한 곳은 쇠퇴하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특정 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이 권력을 남용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공동체 활동가들이 운동성을 포기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매도할 수 없다. 점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관계자 모두를 권력 논리와 시장 논리에 순응하게 하면서 변해간다. 조금은 고리타분하지만 사회학의 개념을 빌려서 말하자면, 뉴타운과 관련된 제도를 재민주화했던 도시재생제도가 다시 식민지화되는 것이다. 마을공동체사업, 주민자치제도, 시민참여제도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물론 그 수준은 다르겠지만 민주적으로 논의해가는 역량을 키워나가며 근린이라는 자신들의 생활세계를 합리화해가던 주민들의 과정에 권력 논리와 시장 논리가 다시 우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되면 주민은 조그마한 동네일에 대해서도 위정자, 또는 장사꾼의 행동을 답습하거나, 그 자리를 정당과 끈이 있을 법한 유지’, 또는 정비업계와 연관될 법한 업자가 갈아치울 것이다. 설득과 변화보다는 소송과 승패가 우세해질 것이고, 공공성이 설 자리는 점차 축소될 것이다. 당연히 그나마 공공성을 띤 소규모주택정비사업 또한 점차 요원해질 것이다. 과한 염려가 아닌가 싶어도 2세대 도시재생의 기준으로 선정된 신규 지역에서 이러한 경향은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서울의 경우, 쇠퇴해가는 재개발·재건축희망지역에서 주택정비사업이 실현되려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떠나지 못하는 소수의 주민만 살고 있는, 대부분의 토지소유자들이 부유한 외지인들인 동네여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주택정비사업을 주제로 주민설명회를 열면 동네에 대충 현수막 몇 개만 걸어도 참석 인원이 꽤 된다. 도시재생의 기조가 바뀌기 전에 일했던 센터와 비교했을 때, 이렇게나 쉽게, 이정도 규모의 인원들을 모을 수 있다니 인간의 이해관계란 게 참 대단하긴 하구나 싶다. 그 덕에 이전 직장에선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설명회 관련해서 꽤 무례한 어투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전화도 종종 걸려오기도 하고, 현수막을 걸고 있으니 정비업체의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정중하게 명함을 주기도 한다. 임장을 온 것처럼 보이는 다소 속편한 얼굴을 가진 외부인들이 설명회에 대해 시시콜콜 문의해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 나이 들어서 이사하면 뭐 하겠냐, 집만 가지고 있다가 자식한테 주겠다며 재개발을 추진하는 이웃들을 원망하는 어르신들도 보게 된다. 거주하는 게 쉽지 않고, 자산 증식에 관심이 아예 없진 않아 동네 친구 따라 재개발 관련 주민설명회에 참여한 어르신도 숱하게 보게 된다. 이 분들은 대개 설명회에서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동의서에 날인하는 것 자체에도 경계심을 쏟는다. 돌이켜보건대 실상 주민설명회는 이렇게 다양한 참여자들이 꽤나 규모 있게 모여 적극적인 질의응답으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전달에 그칠 뿐 정치적으로 분란을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일어나진 않았다. 설명회를 지원하긴 했지만 사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주민들은 재개발구역을 지정하고 해제하는 과정에서 아파트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파편적인 삶을 이미 선취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취는 수많은 폭력의 과정을 담보하고, 끝내 아파트 재개발을 스스로 실현하는 것 같다. 섬뜩한 선취다. 위정자들은 통치의 관점에서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도시재생의 기조를 바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개인적으로 서울시의 기조가 국가 단위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도,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너무 경솔하게 바뀐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도시 서울의 근린공동체는 다른 지역보다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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